토요타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캠리의 입성을 계기로 한국 자동차시장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스타일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지만 인테리어는 포근함과 안락함, 높은 감성 품질로 승객을 감싼다. 2.5L 175마력 엔진과 6단 AT가 조합된 기본형은 적당한 출력과 연비의 밸런스가 뛰어나고, 3,490만원의 매력적인 값으로 쏘나타, 그랜저를 위협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터스포츠는 스톡카 레이스 나스카(NASCAR) 시리즈다. 오벌 코스를 달리는 경주차들은 양산차 형태의 친근한 모습이지만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벌이는 몸싸움은 포뮬러 머신에서는 볼 수 없는 박진감을 제공한다. V8 OHV라는 먼지 풀풀 날리는 구식 엔진을 고집하는, 미국색 충만한 나스카는 덕분에 수십 년간 빅3만의 잔치였다.
그런데 2007년 여기에 토요타가 도전장을 내고 캠리를 출전시키기 시작했다. 1954년 재규어 이후 두 번째 해외 모델이자 일본차 최초 출전. 나스카의 인기를 통해 홍보효과를 노린 출전이었지만 그만큼 캠리가 미국시장에 넓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캠리는 몇 년 후 한국 자동차시장에서도 이처럼 흔하고 친근한 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중형 세단시장에 토요타가 일으킨 파문은 쉽게 가라않지 않을 기세. 고급차에 편중되었던 수입차시장을 중저가시장으로 확대 재편성시킬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현대/기아 등 한국 메이커들을 바싹 긴장시키고 있는 태풍의 핵이다.
토요타의 월드 베스트셀러 한국 상륙
캠리는 토요타가 자랑하는 월드 베스트셀러로 연간 100만 대 수준의 엄청난 판매고를 자랑해왔다. 미국시장에서 매년 40만 대 이상 팔리는 승용차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오세아니아, 동남아지역에서도 인기가 엄청나다. 캠리라는 이름은 일본어 かんむり(冠) 즉 왕관이라는 의미. 이 차의 데뷔 당시 토요타는 크라운과 카롤라, 코로나 등 왕관과 관련된 이름짓기를 즐겼다. 그리고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로 Camry는 애너그램으로 my car가 되기도 한다. 전세계 수많은 고객들의 ‘my car'가 됨으로써 토요타에게 영광을 안겨주었으니 더 이상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1980년 셀리카의 세단형으로 셀리카 캠리가 등장한 2년 후 독립 모델 캠리가 되었고 4세대부터는 미국 전용 모델이 등장했다. 이번 국내에 선보인 모델은 2006년 풀 모델 체인지된 8세대(미국형으로는 6세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했던 캠리의 스타일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날카롭고 스포티한 이미지로 모습을 바꾸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캠리의 스타일은 대체적으로 무난한 첫인상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기라면 70점 정도? 특히 끝부분을 날카롭게 꺾은 헤드램프와 프론트 그릴 그리고 여기에 어울린 리어램프 디자인은 무언가 마무리되지 않은 인상이다. ‘퀸카’라는 말에 잔뜩 기대하고 소개팅 자리에 나갔으나 평범한 첫인상에 실망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반면 C필러를 날렵하게 눕혀 매끈하게 다듬은 루프라인은 날렵한 스타일과 공간확보라는 요소를 적절한 선에서 아우른 결과물이다. 길이 4.8m, 너비 1.8m가 넘는 체구는 신형 쏘나타보다 살짝 작은 크기. 어코드가 사이즈를 키워 풀사이즈급으로 노선을 바꾼 것과 달리 토요타는 미드사이즈 세단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조금 망설이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자 겉모습에서 받았던 실망감이 금세 사라진다. 넓고 안락한 인테리어는 승객에게 높은 만족감을 준다. 부드럽고 풍만한 곡선의 대시보드와 베이지 색상의 차분한 색 배합, 부품들 간에 딱 맞물리는 높은 피팅감과 촉감 등 높은 감성 품질 덕분이다.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원기 회복’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했다는 개발진의 이야기가 이해가 된다.
빛의 반사를 억제하고 최대한 검게 처리한 계기판은 렉서스에도 쓰이는 옵티트론 미터여서 강한 햇빛 아래서도 정보를 정확하게 전하는 높은 시인성이 자랑거리. 부채꼴의 타코미터 안에는 시프트 게이지가, 오른쪽 속도계 안 모니터에는 다기능 디스플레이가 달려 적산거리와 주행거리, 평균연비 등이 표시된다. 대형 센터페시아는 에어벤트와 내비게이션, 공조 스위치가 달린 지극히 정석적인 레이아웃.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내부 시스템과 통합해 별도의 리모컨 없이 조작할 수 있는 점은 좋지만 지도 그래픽이 세련되지 못하고 초성검색이 안 되는 등 약간의 기능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인다. 스위치의 크기나 배치도 좋고 조작감도 나무랄 데 없다. 투명 커버에 조명이 들어오는 스위치 패널 디자인은 구식 오디오 디자인을 연상시키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부분.
실내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얻다
베이지 가죽과 갈색 우드 패널의 조합도 멋지다. 렉서스의 검은색 가죽-붉은색 우드 조합보다 오히려 고급스러워 보인다. 시트는 크기가 적당하고 안락한 대신 홀드성은 조금 떨어진다. 과격한 조작 때 조금 불안하지만 장거리 이동에는 매우 적합하다. 기본적으로 스포티함을 추구하지 않는 캠리이고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오디오는 모니터 뒤에 CD와 DVD 두 개의 슬롯을 제공하며 MP3와 WMA 포맷을 지원한다. 아울러 별도 단자를 통해 아이팟 등 외부기기 연결도 가능하다.
캠리는 현재 직렬 4기통 2.5L와 V6 3.5L 휘발유 엔진 그리고 하이브리드(2.4L+모터)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2.5와 하이브리드 버전이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4기통 2.5L급은 미국 중형 승용차시장에서 가장 대중적인 크기로 예전 6기통 수준의 출력과 뛰어난 연비가 가능하다. 흡배기 가변식 밸브 시스템 VVT-i를 갖추어 최고출력 175마력에 최대토크 23.6kg·m, 아울러 12.0km/L의 공인연비를 실현하고 있다. 토요타답게 아이들에서의 소음이나 진동이 매우 적어 조용하고, 강력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힘과 넓은 토크밴드를 바탕으로 재빠른 6단 자동변속기를 더해 순발력 있는 가속을 제공한다. 스포티하지는 않아도 절대 빈약함을 느낄 수 없는 동력계다. 시프트 레버는 스텝 게이트식으로 외쪽 끝으로 밀면 스포츠 모드가 되고 여기서 앞뒤로 움직여 수동으로 시프트업/다운한다.
한편 서스펜션은 지나치게 장거리 크루징에 중점을 맞춘 듯하다. 댐퍼와 스프링은 현대차를 능가하는(요즘 현대도 이 정도는 아니다) 부드러운 감각으로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크루징에 들어서면 금세라도 승객들이 단잠에 빠져들 것 같은 안락함을 제공한다. 스티어링 중립에서의 유격은 거의 없지만 조작 반응성은 한 박자 이상 느리고 굼뜨다. 안락한 승차감을 위해 조종성능을 어느 정도 희생한 셈. 스포츠 세팅을 선호하지 않는 토요타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대신 주행안정장치 VSC를 모든 버전에 기본으로 갖춤으로써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또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7개의 에어백이 운전자의 무릎(니 에어백)까지 보호하도록 설계했다.
나긋나긋한 서스펜션은 브레이크를 조금만 세게 밟아도 앞뒤로 시소를 타듯 피칭이 발생하고 코너에서 롤링도 크다. 따라서 급차선 변경이 조금 불안하고 급코너에서는 충분히 속도를 낮추어야 한다. 하지만 스포츠주행을 원하는 오너라면 어차피 알티마나 마쓰다 쪽으로 눈길을 돌릴 터. 대다수 운전자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다.
한국차, 수입차간 무한경쟁의 시작
한때 한국 수입차시장에서는 중저가 차가 그다지 매력 없는 존재였다. 국산차와 가격차이가 큰 데다 ‘수입차=고급차’라는 인식에 비추어 잘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국산차들이 고급화의 길을 걸으면서 비싸졌고, 수입차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국산차와 수입차의 직접 경쟁 시대가 비로소 열렸다. 캠리의 판매대수가 아직 쏘나타에 한참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한국 자동차시장이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다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더구나 캠리는 세계 1위 기업 토요타의 간판모델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현대의 대표 모델 쏘나타가 해외시장에서 넘어서야 할 가장 높은 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을 뿐 아니라 값마저도 3,490만원으로 책정되어 국산차들과 차이가 크게 줄었다. 쏘나타에서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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